파블로 아이마르: 메시가 존경한 천재, 아르헨티나가 낳은 환상의 10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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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술처럼 축구를 그렸던 남자
**파블로 아이마르(Pablo Aimar)**는
축구에서 '마법 같은 패스'와 '감각적인 움직임'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선수입니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상징적인 ‘등번호 10번’ 계보를 잇는 천재형 미드필더였으며,
리오넬 메시가 "내 우상이자 영감"이라고 말할 정도로 후배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긴 전설적인 플레이메이커였습니다.
2. 커리어 요약 – 아르헨티나부터 유럽 무대까지
✅ CA 리버 플레이트 (1996~2000)
1996년 17세의 나이에 리버 플레이트에서 데뷔.
어린 나이에도 경기 조율 능력과 창의적 패스로 팀의 중심으로 성장.
리그 우승 3회, 남미 최고의 유망주로 유럽 이적 초읽기 상태에 돌입.
✅ 발렌시아 CF (2001~2006)
2001년 스페인 발렌시아로 이적,
‘마법 같은 왼발’로 라리가에 빠르게 적응.
라리가 우승 2회(2001–02, 2003–04), UEFA컵 우승(2003–04)
팀의 10번 역할로 루벤 바로하, 비센테, 마르체나, 라파엘 베니테스 감독과 함께 황금기를 견인.
부상으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진 못했지만, 뛸 때마다 존재감은 확실.
✅ 레알 사라고사 & 벤피카 (2006~2013)
사라고사로 이적 후 꾸준히 뛰었고, 이후 포르투갈 벤피카로 이적.
벤피카에서 리더로 활약하며 타이틀 복귀의 기반을 다졌고, 팀의 정신적 지주 역할 수행.
총 5년 간 활약하며 포르투갈 리그에서도 수준 높은 경기력을 유지.
✅ 리버 플레이트 복귀 & 말레이시아 말라카 유나이티드 (2013~2015)
말년에는 친정팀 리버 플레이트로 복귀 후 은퇴 선언.
이후 말레이시아 리그에서 잠시 선수 생활을 이어가며 커리어 마무리.
3. 국가대표 커리어 – 아르헨티나의 10번
✅ A매치 52경기 8골 (1999~2009)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출전
코파 아메리카 2회(1999, 2007) 및 다수 국제 경기 경험.
대표팀에서는 리켈메, 베론, 오르테가 등과 경쟁하며 교체 자원 또는 창의적인 조커로 주로 활용됨.
미드필드의 리듬과 템포 조율에서 빛을 발했으며, 전성기에는 월드클래스 창조형 미드필더로 평가받음.
4. 플레이 스타일 – ‘축구 예술가’라는 별명에 걸맞은 남자
✅ 강점
감각적인 드리블과 방향 전환: 좁은 공간에서 수비를 제치는 기술은 예술 수준.
킬 패스와 템포 조절 능력: 경기를 설계하는 ‘지휘자’로서 최고의 시야 보유.
움직임의 미학: 공이 없을 때의 공간 활용이 뛰어나며, 창의성 있는 선택으로 수비를 흔듦.
페어플레이와 겸손한 태도: 경기 외적으로도 많은 존경을 받음.
❌ 약점
유리몸 체질: 크고 작은 부상으로 연속적인 경기력을 유지하기 어려웠음.
피지컬 부족: 스피드와 체격이 강점은 아니었기에, 피지컬 중심 전술과는 맞지 않는 편.
‘월드클래스 잠재력’에 비해 꾸준한 퍼포먼스는 부족했던 점이 아쉬움.
5. 주요 수상 경력
라리가 우승 2회 – 발렌시아 (2001–02, 2003–04)
UEFA컵 우승 1회 – 발렌시아 (2003–04)
포르투갈 리그컵 4회 우승 – 벤피카
아르헨티나 리그 우승 3회 –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 올해의 유망주, 라리가 베스트 11 선정 이력
6. 마음에 남는 10번, 메시의 우상
파블로 아이마르는 수치로 모든 걸 설명할 수 없는 선수였습니다.
그는 팬들의 감정에 파고드는 플레이,
즉흥적인 창의성, 기술, 그리고 축구를 예술로 만든 섬세함으로 기억됩니다.
리오넬 메시가 “그를 보고 축구를 꿈꿨다”고 말할 정도로
후배 세대에게도 영감이 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트로피보다 감동을 남긴 선수였고,
**“아이마르 – 그라운드를 붓으로 물들인 축구 예술가”**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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